과몰입 주의 : Over-immersion

이샛별, 정지윤

2024.11.19 -12.24


허깨비를 본 것일까, 석고상을 본뜬 듯 단단한 형체를 가진 무표정의 인물들에 텅 빈 눈이 꽤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눈은 인간 내면을 투영한다던데. 순수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두 눈과 앙다문 입에서는 어떤 견결함까지 느껴진다.

표면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색채와 뭉툭한 덩어리 감을 가진 신체의 연장선으로 인물이 취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어떤 손들이 화면 속에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어딘가 미심쩍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색채를 같이 하므로, 안면에 붙어있어서, 애매하게 적절한 각도라는 이유들로 마치 몸의 일부인 척 위장을 한 타인의 손이 등장함을 알아채게 된다.

이샛별 작가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회적 체계 혹은 구조 속에서 시선을 통해 주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룬다. 그는 작품을 전개하는 시점의 시대상을 기민하게 맞추어 그 흐름을 기법과 재료 표현방식까지 다르게 하여 표현해왔다. 과거 개인이 프레임 속 생존 본능에 의해 보호색을 띠어야만 하는 고정적 대상으로 함축되었다면 동시대에는 능동적 주체로서 맺게 되는 시스템과의 관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떤 영향을 받으며 위장을 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b. 1926~1984)는 구조 자체에는 본래 권력이 없고 사회적 수용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의미를 얻으며 모든 구조는 수정되거나 교체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에 기반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시스템인 디지털 유토피아는 시공간적, 물리적 소통의 자유를 선사하기에 현존하는 인류가 이룩한 가장 최전선의 쾌거이자 평등한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동시대 A.I.의 등장으로 하여금 불거지는 인간의 자율적 표현의 한계와 그로 인한 권력관계와 같이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채 생겨나는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작가는 이모티콘으로 쉽게 제안되는 단순 감정의 응집성과 제한성에 대한 함의와 관련하여 손쉽게 치환되기 때문에 더욱 인지하기 어려운 E-프레임(시스템) 속 내적 표현의 간극을 다룬다.

도통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는 화면 밖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두 눈 안에는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가령 고정된 체계에서 드러나는 영민한 영혼이나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자 억압을 넘어서고야 마는 이상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있다. 사윈 눈빛 너머 말갛게 빛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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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무수히 많은 색과 구체화된 음영들이 동시대의 이미지로 기능하며 시끄러운 잡음을 만들어낸다고 할 때, 정지윤의 회화는 필수요건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배제함으로써 시간의 더께가 얹힌 듯 정돈된 안정감을 제시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일 획의 연속으로 생명을 부여받은 패턴화된 객체들이 등장한다. 화면 속 상황은 작가가 미디어 환경에서 차용한 이미지이지만, 단순 묘사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조형적 요소를 찾아 재해석되었다.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유닛의 붓 터치들, 흩뿌려진 액션 페인팅의 리듬감에 대비되는 단순화된 화면 구성은 캔버스에 압착해 놓은 듯 정지되어 보인다. 이는 연속적 시간 속에서 일순간 정지감을 느끼는 ‘몰입’의 속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지윤의 회화가 더욱 균형 있어 보이는 이유는 몰입을 다루되, 간극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화면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중성적인 색감, 주제부와 여백의 비례, 대상의 구도와 배치, 정면을 응시하지 않음으로써 화면 너머와 마주하지 않는 인물들의 시선들, 익명성을 위한 서양인 모델의 선택 등 작가가 회화로서 대상 이미지의 측면들을 자기 이미지로 귀속시키지 않기 위해 구성하는 의도적 장치와 객체를 환원하는 과정의 연속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간극의 내러티브는 작품과 마주할 때에 마치 풋낯을 조우한 듯 관람자로하여금 긴장과 호기심이 동반되는 이유가 된다. 이윽고 작가가 그러하였듯 관람자 역시 미디어 속 인물들에 대한 방관자로서 남지 않고 안온한 순간들에 몰입하는 주체자로 변모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푸른색의 모노톤은 에너지가 발산되는 형상들과 만나 차가운 인상을 포근하게 정돈하고 단순함에서 오는 자유를 연상시키며 리듬적 스타일의 궤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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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과 정지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대인의 정체성과 감정적 상태를 탐구하는 작업을 펼친다. 두 작가는 감각적 경험과 시각적 상징을 사용하여 작품 속 인물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소외되거나 몰입되는지를 드러낸다.

 

이샛별의 작업은 ‘기능하지 않는 눈’을 통해 외부 세계와의 단절과 소외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작품 속 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시각적 수용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기능하지 않는 눈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차단된 상태로, 이러한 시각적 상징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힘과 개인의 위치를 탐구하며,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담아낸다.

 

반면, 정지윤의 작업은 몰입과 집중이라는 감각적 상태를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깊이 몰입된 상태로 표현되지만, 작가는 인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과 주제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단순히 작품 속 상황에 몰입하기보다,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두 작가의 작업은 시선과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맥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이샛별의 기능하지 않는 눈은 현실과 차단되고 재구성하는 시각적 실험을 제안하며, 정지윤의 작품은 몰입과 거리 두기를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창출한다. 두 작가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 방식으로 시각적 수용의 경계를 해체하고, 이를 통해 관객에게 현대인의 심리적, 사회적 경험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